명사 칼럼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혜 칼럼

명사 칼럼

대한사회복지신문 인터넷 뉴스 창간에 붙여

 

송현상바리톤.jpg

국립합칭단.

미국 뉴욕주립대학 박사.

챔버코랄 상임지휘자

본보 칼럼위원

 

 

내가 미국 뉴욕에서 유학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맨하탄 시내에서 버스를 탔는데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기사는 인도에 차를 가까이 대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에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모든 과정이 걸리는 시간은 약 5 분가량 되는 듯했다. 버스가 움직이지 않고 5분 동안 서 있는 시간이 버스를 탄 승객들 입장에서는 결코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없을 터, 하지만 그 날 버스에 탄 승객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상황에 짜증을 내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이가 없었다. 한 사람의 장애인을 대하는 버스기사나 시민들의 성숙한 태도에서 선진국다운 나라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기억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제 일인 듯 기억이 선명하다.

 

뉴욕의 모든 시내버스는 저상버스로서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해놓았다. 한 나라가 얼마나 선진화되었는가를 가름하는 바로미터의 하나가 사회적 약자 그 중에서도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가이다. 현재의 미국이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이 많이 퇴색되었다고는 하나 장애인을 대하는 정책에 있어서는 아직도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최소한 장애인이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도록 돌보아주는 시스템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는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고 지금도 나아지고 있긴 하나 그 속도는 너무나 더뎌서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다 지쳐 죽을 지경이다.

 

맹자가 제선왕에게 왕도정치를 말할 때 주 문왕(周 文王)이 사회적 약자로서 아무 데도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는 환과고독(鰥寡孤獨-늙은 홀아비, 늙은 과부, 어린 고아, 독거노인) 등을 가장 우선으로 돌보았기에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이라며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을 보살피라고 당부하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경제발전에 따른 부의 양극화가 심해짐에 따라 날로 늘어나는 사회빈곤층의 문제는 점점 심각한 상황을 넘어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라 하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북지 지출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선거 때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발전시키겠노라고 말로만 외칠 뿐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모른 척 해온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일이다. 우리 곁의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시해도 그만인 남이 아니다. 국가를 한 사람이라고 비유할 때 머리가 중요하고 손발은 중요치 않다 하여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손 끝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온 신경이 그곳에 쏠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집단 중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전체 또한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일례로 한 집안에 평생 돌보아주어야 할 장애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집은 그로 인해 평생 벗을 수 없는 혹독한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있어 장애인이 되길 원했을까. 누구든 예기치 못 하는 순간에 장애인이 될 수 있으며 ‘환과고독’의 신세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뇌질환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24시간을 옆에서 돌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 집은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도저히 혹독한 삶의 질곡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OECD 노인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청소년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 출산률 최하위 등등 국가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이 악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고 사회가 곳곳에서 썩어나기 때문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란 법과 제도로써 시스템을 향상시키고 최악의 생존조건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돌보는 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임은 두 번 말할 것도 없을 만큼 자명하다. 국가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두 눈 부릅뜨고 비판하는 것이 주권을 가진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고 사회적 공기(公器)역할을 해야 할 언론의 사명이다.

 

2006년 7월에 창간하여 16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661호를 발간, 사회적 약자들의 입과 귀가 되어준 대한사회복지신문이 이번에 드디어 인터넷신문을 창간하게 되었다. 모두가 돈 되는 곳, 권력이나 이권이 있는 양지를 바라보고 나아가려 할 때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괴로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권익 신장을 위하여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온 그 인고의 시간에 우레와 같은 손뼉을 보내고 싶다. 경기도 지역 일대에 국한하지 않고 명실상부한 전국지로서의 당당한 면모를 갖춘 대한사회복지신문이 이제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을 최소한 OECD 국가의 평균치까지 만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전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들쳐내어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언론의 막중한 임무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6년간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어 달려왔던 노하우를 살려 인터넷 신문까지 창간하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라 할 수 있으리라. 처음 대한사회복지신문을 창간할 때 품었던 아름답고 숭고한 뜻을 견지하여 좌고우면 하지 말아 이 사회를 밝히 비추고 낮고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참 언론으로 더욱 발전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